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 Books

"저 뒤에 걸린 유화도 아버지가 30분만에 그린 겁니다."

이 무슨 밥 아저씨처럼 참 쉽죠?라고 말할 것같은 포스...
밥아저씨랑 달리 주로 인물화를 그렸지만.


서점가서 아무 생각없이 집어 들었다가 뭐야? 이 인체데생의 달인은?!! 싶어서 도서관에 신청해서 봤습니다.(야, 좀 사라;)
변월룡의 평전인지라 작가의 빠심이 돋보입니다. 그럼에도 상당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작 그의 대작이라 불릴만한 작품들의 태반의 소재를 몰라서 책에 소개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네요.

일제시대 연해주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호랑이사냥꾼이었던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소년. 어려서부터 뭔가 끄적대는 걸 좋아해서 할아버지는 동네에 서당도 없어서 서예선생 모셔다 가르치는 등 사랑을 줍니다. 학교다니다가 할아버지 돌아시고 어머니, 누나가 있긴하지만 가장이 되어버린지라 계속 학교를 보낼까 고민하다가 계속 보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학교에 편입해서 다니게 됩니다. 다니는 동안 집안 사람을 돕기위해 근처 아동출판사에서 알바하게 되었고 당시 학교들이 막 생기던 때라 교과서의 삽화를 그리게 됩니다. 자기가 만든 교과서로 학교에서 공부를 하네요. 그리고 스물에 학교를 졸업하고 이대로 출판사에서 일하려고 하지만 주변사람들이 좀 더 큰 물에서 배워야 한다고 해서 유학을 가게됩니다.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일하던 출판사는 원거리가 되더라도 계속 네 그림을 받고 돈을 주겠다고 하고....해서 스베르들롭스크 미술학교에 3학년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여기서 스탈린 개새끼를 외칩니다. 연해주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시킵니다. 변월룡은 다행히도 저기에 휘말리지 않았지만... 가족을 만나러갈지(돌아올 수 없어;;;) 계속 공부할지.. 근데 재정지원이 끊겼..... 해서 여기서도 다시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학교를 다니기로 합니다. 미술전문학교가 있는 곳인지라 경쟁자들이 장난아니였는데 성실함 말고는 무기가 없었다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때문에 성실함으로 극복하고 소수민족차별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극복했다고 합니다. 조용조용한 성격인데 할 말은 다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계속 여기서 일할 것인가 가족을 만나러 갈것인가 고민하는데 담당교수가 대학원 가라고 합니다. 고민끝에 작품내서 전시회에 내서 입상하고 입학자격을 얻어 미술아카데미(레핀대학)에 입학하고 신분보장 받게 되서 가족도 다시 만나고 재학중에 같은 학교에서 부인될 사람도 만나고 합니다. 레닌그라드에 있는 학교인데 재학중에 독일의 포위공격에서 빠져나가기도 하고... 참;;; 해서 졸업이 조금 늦어졌지만 졸업하고 바로 조교수가 되고 2년뒤 부교수가 됩니다. 하아, 근데 정교수가 되는 건 20년도 더 뒤...(먼눈)



한국 최초의 미술학 박사라는 타이틀... 한국 서양미술에서의 미싱링크라고 작가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제시대 당시의 미술을 한 많은 사람들이 서양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의 미대로 갔는데 당시 일본의 미대는 돈만 내면 다 다닐 수 있었고 거기서 박사까지 다닌 사람은 없었고. 그전에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는 2~300년 전부터 서양현지인들이 들어와서 사실주의기반의 미술을 배웠지만 한국은 사실주의가가 가고 인상주의만 남은 변형된 일본의 서양미술을 배웠다는 것이 문제. 해서 데생등을 기반으로 한 기초가 매우 거시기함. 이 부분에서 변월룡은 서양미술을 현지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친 한국서양미술사의 맥을 이어주는 존재라고..... 하는데 북한에만 그 맥이 이어졌...(먼산)


부교수가 된 해에 북한으로 파견을 가게 됩니다. 3개월간의 파견이었는데 변월룡의 소문을 듣고 진짜배기인가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고 3개월간 이 사람 진짜배기다!! 라고 느낀 북한애들이 3년간 파견을 요청해서 그렇게 머물 예정이 되지만...
한인강제이주등 소수민족차별에 대항해서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더 강해졌을 거라는 작가의 추측이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북한으로 파견 되서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당시는 뭐 6.25끝나고 미술대학설립하는데 도와달라고 초청된 거라. 대학의 수준은 대학생이 대학생 가르치는 레벨. 해서 교수들 레벨부터 높여야 했고 각자 알맞은 분야로 재배치도 해야 했고 교과서, 교과과정도 만들고 정말 할게 많았습니다. 3개월끝내고 3년짜리로 왔을 때는 총장으로 임명하는데 이미 총장이 있는데?? 권력싸움이 일어날 것같았지만 현명하게 대처해서 일만 합니다. 각 분야 사람들이 질문하고 물어오는데 다 대답을..... 이 사람들 너무 의지하는 거 아냐;;; 거기다 광복기념 전시회도 준비하고..


그 와중에도 한국화학과 개설해야한다고 한국화의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한 것들이 있네요. 김홍도의 씨름을 절찬하면서 이런 한국화의 맥을 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컴포지션(구성)이 절묘한게 긴장감이 집중되는 가운데 바깥을 바라보는 엿장수로 그 긴장감을 풀어내고 아무렇게나 그은 듯 한 한 획 한 획으로 살려낸 인물들의 생생한 표정들이 참 좋다고......
전 봐도 못 느끼던 것들...orz...


당시 북한 미술가들 중에 변월룡을 제일 따랐던 사람이 문학수라고 이중섭하고 동갑이지만 1년선배로 많이 영향을 줬다던가 뭐라던가 근데 정말 변월룡에게 달라붙어서 많이 배우고싶다고 하면서 계속 같이 다녔다고.... 옆집살고 싶다고 하면 말 다했..--;;


그렇게 너무나 열심히 일하다가 1년반째에 계속 습했던데다 과로가 겹쳐서 이질에 걸려 쓰러집니다. 이러다 죽으면 국제문제된다 부인 불러와라. 해서 부인이 옵니다. 부인이 간병하고 재촉해서 본국으로 가자고 합니다. 변월룡은 남아서 좀 더 많은 것들을 전해주고 싶었던 지라 다시 파견나오기로 하고 일단 러시아로 돌아갑니다. 근데 파견요청이 안 들어오죠. 네..... 북한에 두고온 교수들은 빨리 와달라 보고 싶다, 이것 좀 가르쳐주삼 하고 편지가 막 옵니다. 일일이 답장써주는..... 부인은 이런 헌신적이고 사람좋은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파견요청이 안 들어옵니다. 그 와중에 평양미술대학에 대한 칼럼이 씌였는데 변월룡의 업적은 싹 빠지고 다른 교수들의 업적으로 채워집니다. 뭥미?! 싶어졌는데 나중에 변월룡이 깨달은 것은 북한에서 나올 때 누가 귀순하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아직은 안 된다 기다려달라, 러시아에서 가져올게 여러가지 의미로 너무 많다. 왔다갔다하는게 더 도움된다라고 하며 거절한게 원인이 되어 숙청리스트에 올라간게 아닌가 한 것. 그 뒤로도 편지로 계속 교수들과 교류는 이어졌지만....김정일이 러시아파 다 숙청하고 나 정권 안정됐어요~ 하면서 과시하기 위해 해외동포들 구경오는 거 하락할 때 이번엔 갈 수 있겠지 하고 신청했는데 안 됩니다. 매형도 가는데?! 왜 나는?!!

하고 멘붕합니다.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먼눈) 해서 매년 출품하던 작품도 2년간 출품을 못 하네요. 고향 연해주를 방문하고 가족들하고 해외여행을 하면서 어떻게 추수리긴 하는데 이전같은 열정은 사라진 것같다는데 우움.....이후 북한하고 편지연락도 끊기고 계속 대학교수하시다가 뇌졸중으로 은퇴하고 한러수교 2개월인가 전에 돌아가십니다.

책 초반에 작가가 러시아 가서 변월룡에 대해 알게 되고 그 가족을 찾아가 이야기도 하는데 어느 순간 가족들이 만나길 거부하는데 저 이유로 부인이 한국사람을 거부했던 것. 남한이니 북한이니 차이도 못 느꼈을 테고 존재조차 몰랐던 남한은 뭐..--;; 하지만 작가가 계속 방문하고 졸라서 다시 만나고 마음을 트게 됩니다. 해서 한국에서 전시회도 기획하고 광복 60주년 기념이다~ 전시회다~ 하는데 북한에서 태클들어와서 중지.-_-............ 부인도 멘붕할 지경;;;

북한 방문 당시 부인이 얘들 왜이리 레벨낮아 컴포지션은 미술가가 평생 안고 가야하는 숙제인데 연구는 한 거야? 싶은 발언도 있.....-_-;;; 부인, 그게 그나마 레벨업한 거..;;;

북한의 데생교과서 이야기부분에서 1학년때는 머리통만 2학년때는 손발 3학년때는 1명다 4학년때는 여러명 을 데생 수업때 그리도록 짜고있습니다. 조각이건 회화건 데생기초가 잡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 러시아쪽 교과서에 쓴 서문이 책에 발췌되어 있는데 '미술 전공자가 모델 없이 기억에 의거하여 자유로이 데생을 할 수 있게끔 가르치는 것이 미술 교육계의 가장 중요한 과제' tlf제 모델 놓고 데생연습 몇 년 하고 기억에 의존해서만 그릴 수 있게 시각기억력을 단련해야한다고 해부학적 지식도 모델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필요하고... 차스차코프는 "데생을 할 때는 항상 세 가지 각도에서 실물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라"라고 했다며 실물 모델을 데생할 때도 상상력을 가지라고.... 항상 언제라도 데생하는 열정을 가지라고...

보, 보이는데로 그리는 건 입문자코스였구나. 역시.....

아니, 실제로 이분도 항상 데생하고 계셨으니. 직접만든 화구로 언제 어디서나 데생.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해진 사람 데생하고 지루해질 틈도 없이 끝내고 모델(??)이 원하면 그냥 줬다고. 손이 워낙 빠르고 정확했다고.

롤모델이 램브란트였다고 하는데 램브란트와 달리 자화상은 남긴게 없는 것같습니다. 동판화도 열심히 하셨고.....

그러고보니 또 기억에 남는게 사람 눈이 2개라 실제를 보고 그려야지 사진을 보고 그리면 죽은 그림을 그리게 된다는 것.



후반부에는 이분의 스타일이랄지 철학이라면 주변에 도움이 되야한다는 것. 어려서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까닭도 있을 것같네요. 해서 미술하는 사람이 남길 수 있는 것으로 위인들을 그리는 것이 나오네요. 작가가 이 부분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미술가가 전하는 위인에 대한 느낌이 또 남기는게 다르다고 얘기도 하고. 이 분이 또 상하 지위 구별없이 막 그리셨는데 이런 부분도 본받아야하지 않나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피카소가 사회를 비판하는 그림을 그렸듯이 미술가가 현실세계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존재가 아니기에 자신이 받은 것도 많기에 그것을 갚기위해서라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고....



그럭저럭 재밌게 읽기도 했고 볼거리도 좀 있었고 느끼는 게 참 많았네요. 아아... 사십대중반의 멘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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